제주 올레 21 코스(하도-종달)

백재선 기자의 여행길 이야기

제주 올레 21 코스(하도-종달)

백재선 / 전임기자

제주 올레 21코스는 하도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시작한다.

 

 

 

 

 

해녀박물관 근처 식당에서 보말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매생이를 넣어 시원한 맛이 있었지만, 지난번 6코스에서 먹었던 보말 칼국수보다 그릇 밑에 깔린 보말이 너무 적어 아쉬웠다.


시작점에서 안내를 받고 본격적으로 올레길에 나섰다. 21코스 시작점 올레길 안내자는 사무실에서 나와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직접 길을 안내해주었다.


시작점 인근에 있는 해녀박물관은 규모도 크고 현대식 건물이다. TV에서 이따금 방영되었던 해녀 관련 공연은 이곳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올레길 시작점에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높이 들어서 있다. 기념탑 앞에는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세 분의 해녀 흉상이 세워져 있다. 자료를 보니 1931~1932년에 걸쳐 구좌ㆍ성산ㆍ우도지역 해녀들이 일제 식민지의 약탈 정책에 저항해 대대적인 항일운동에 나섰다고 한다. 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총 238회에 걸쳐 연인원 1만7천 명이 참가했다.

 

 

 

 

 

기념탑 앞에 새겨진 해녀 노래 비석에는 당시 해녀들이 처한 현실이 그대로 묻어 나와 옷깃을 저미게 한다.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공원을 빠져나오니 나지막한 연대 동산이 나왔다. 낮은 동산이지만 앞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낮이라 햇빛이 강했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올레길은 숨비소리길로 이어졌다. 숨비소리길은 깊은 물 속에서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누비던 길이다.

 

 

 

 

 

그러고 보니 올레길에는 해녀들의 생활터인 밭과 바다가 함께 하고 있다. 돌담에 둘러싸인 밭에는 녹색 작물이 자라고 있고, 돌담 앞에는 노란 들꽃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바닷가 쪽으로 검은 돌로 축조된 성이 듬성듬성 펼쳐져 있다. 성곽이 많이 무너졌지만 조선 성종 때 구축한 별방진이다.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구축한 진성으로 제주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진성(鎭城)이다.

 

 

 

 

 

올레길은 민가로 들어서니 故고이화 해녀 생가와 마주쳤다. 고이화 해녀는 일제 강점기 시대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들한테 심한 구타를 당했고 풀려나자 일본 대마도까지 가서 해녀 생활을 했다.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4.3 사건으로 시댁 식구들이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남편마저 홧병으로 죽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녀는 충청도와 백령도 등지에서 물질을 계속하며 아들 4명을 잘 키우고 나서 다시 제주로 돌아와 97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최고령 해녀로 생활을 했다. 고이화님의 삶에 제주도의 역사와 제주 해녀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고이화 생가에서 나와 민가를 지나 올레길은 다시 해안가로 연결되었다. 해안가 환해장성은 복원이 잘 되어 성곽이 비교적 높았다. 물이 빠진 바다에는 검은 현무암이 넓고 길게 펼쳐져 있었다.

 

 

 

 

 

바닷가 허물어진 성곽 앞에 있는 올레 중간점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길 건너 석다원 휴게실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다시 올레길에 나섰다.

 

 

 

 

 

올레길은 해안 길로 연결되어 있어 해녀들과 관련된 시설을 마주치게 된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다.

 

 

 

 

 

지금에야 마을마다 해녀의 집이 있어 불턱에서 일보는 해녀를 볼 수 없었지만, 해녀들은 불턱에서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와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기도 했다. 해안가에는 비교적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굿당이 있지만, 문이 굳게 잠겨 들어갈 수 없었다.


해안가 들길은 노란 들꽃과 검은 현무암, 그리고 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뤄 평화롭다. 일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흐린 날씨에 해안 길을 걸을 때 을씨년스럽던 분위기와 너무 대조적이다. 해안가에 여러 모습의 해녀를 새긴 조각이 도보객들을 맞아 준다. 나이 지긋한 해녀,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해녀 모두 행복해 보였다.

 

 

 

 

 

해안가 들길은 돌과 바위가 튀어나와 걷기에 다소 불편하지만 시원한 파도 소리가 귓전에 다가와 피곤함이 오히려 가셨다. 바닷가 지척에 토끼섬이라는 조그마한 섬이 보였다. 토끼섬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토끼는 없고 사람도 살지 않는 무인도이다. 섬 안에는 문주란이라는 수선화과의 식물이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토끼섬에서 자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토끼섬으로 가는 하도리 바다에는 밀물에 들어왔던 고기떼들을 잡아 두는 갯담이 있다. 하도리 굴동에 위치한 갯담은 지금도 고기가 몰려들고 있으며 특히 멜(멸치)이 많이 몰려들어 드는 곳이라서 멜튼개라고 부른다고 한다.

 

 

 

 

 

해안가 올레길은 검은 현무암 바위보다 하얀 모래 언덕을 더 볼 수 있었다. 올레길은 원래 하도 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해안사구를 지나는데 3월부터 6월까지는 휜물떼새가 알을 낳은 기간이라 해변도로로 우회해야 했다.

 

 

 

 

 

해안 모랫길을 걷는 것도 운치가 있지만, 해변도로에서도 멀리 우도와 지미봉이 보여 걷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도해수욕장이 나왔지만, 올레길은 나무 데크로 연결되어 모래를 직접 밟지 못했다. 하도 해수욕장은 모래가 바다 멀리 길게 펼쳐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올레길은 지미봉을 향해 들판 길로 이어졌다. 지미오름 초입은 나무 데크 계단길이지만 다소 가파르다. 가파른 길을 10여 분 오르자 완만한 능선이 나왔다.


10여 분을 더 걷자 마침내 지미봉 정상에 올랐다. 사방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곳이다. 지미봉은 해발 166m에 불과하지만 360도 걸쳐 조망할 수 있다. 분화구가 있는 오름이라고 하지만 분화구는 숲에 가려져 찾아볼 수 없었다.

 

  

 

 

 

지미봉 정상에서는 동서남북 조망이 가능하다. 동쪽으로 우도와 성산 일출봉이 서쪽으로 말미오름과 크고 작은 오름과 멀리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성산 일출봉으로 이어지는 들판은 녹색, 갈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지미봉에서 보는 성산 일출봉은 역시 群鷄一鶴이다. 올레길 1코스 내내 늠름한 성산 일출봉을 보고 흡족하게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미봉에서 나와 종달리로 가는 해안가에는 듬성듬성 하얀 수국꽃이 피워 도보객들을 반겨주었다. 수국꽃 위에 얹혀 있는 성산 일출봉은 아름답기까지했다.

 

  

 

 

 

종달리로 가는 해안가 들판에는 해녀들이 사용하는 불턱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주로 사용한 할망집 알 불턱이,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방방세기 불턱도 보였다. 바닷가 들판에는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해녀를 형상화한 동상도 있었다.

 

  

 

 

 

마침내 21코스 종점인 종달바당에 도착했다. 마침 스탬프를 찍는 부부가 있어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들에게 몇 코스가 남았냐고 물어봤다니 부럽게도 18-1코스인 추자도 코스만 남았다고 한다.

 

  


(2021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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