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7 코스(광령 - 제주원도심)

백재선 기자의 여행길 이야기

제주 올레 17 코스(광령 - 제주원도심)

백재선 / 전임기자

제주 올레 17코스는 중산간 마을인 광령1리 사무소에서 시작한다. 광령리 마을은 대체로 깨끗하고 휴일 아침이라 한적했다. 지형이 높아 서쪽 아래로 멀리 바다와 제주 도심이 보였다.


올레길은 마을을 벗어나자 비교적 큰 하천인 무수천을 따라 이어진다. 무수천은 한라산 장구목 계곡에서 시작되어 25km를 흘러 외도동 앞바다까지 연결된다. 큰길 다리에서 본 무수천은 마치 협곡처럼 현무암 바위가 양쪽을 호위하고 바닥도 넓은 현무암 바위가 깔려 있다. 한라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바다로 흘러가면서 하천 바닥과 양쪽에 갖가지 형상의 기암절벽을 만든 것 같다.

 

 

 

 

 

올레길은 무수천을 따라 들판 길과 민가를 지나간다. 길가에 돌로 깎은 각가지 형상의 인물 조각상이 도열해 도보객을 맞아준다.

 

 

 

 

 

무수천을 따라 걷다 보니 무수천 위로 도로가 마치 하늘을 가로질러 붕 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제주에 오면서 차로 일주도로를 신나게 달렸지만 밑에서 보니 일주도로 대형 다리가 무수천을 짓눌리고 있어 왠지 마음이 성치 않았다.

 

 

 

 

 

무수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무너져 하천 바닥의 바윗돌을 내디뎌야 했다.

 

 

 

 

 

올레길은 큰 도로를 따라 외도라는 마을과 연결된다. 무수천은 도로 밑으로 흘러 바다를 만난다. 무수천은 외도 마을에서 바다까지 큰 강을 이룬다. 밀물인지 썰물인지 모르겠지만 제방 사이로 흐르는 물은 제법 큰물을 이뤄 바다로 흐른다.

 

 

 

 

 

제방 위에 아름 다리 큰 나무들이 서 있고 나무 아래 넓은 평평한 돌과 둥근 돌이 깔려 있다. 옛날부터 밝은 달이 뜰 때 주위와 어우러져서 물 위에 비치는 달빛을 보는 곳으로 월대(月臺)라고 불렸다고 한다.

 

 

 

 

 

과거에는 바다와 한라산 계곡물이 만나는 이곳에 오래된 팽나무와 해송이 휘늘어져 멋진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구경하며 그야말로 풍류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큰 도로와 다리, 상가 건물들이 월대 인근까지 다닥다닥 들어 서 있어 옛날과 같은 정취를 만끽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은 외도 물길 20리에 옛날 사람들이 즐겼던 외도 8경에 대한 안내판을 만들어 외부 사람들에게 마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올레길은 바닷가 외도 포구를 지나자 해안도로로 접어 선다. 해안 도로 건너편에 체 게바라 사진이 걸린 술집이 눈에 들어온다. 세기의 풍운아 체 게바라는 이제 혁명의 아이콘이 아닌 상품이나 상점의 브랜드로 알려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올레길 해안에는 제주 특유의 검은 현무암 암석이 깔려 있다. 내도의 알적지 해안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제주의 동쪽 바다처럼 주상절리나 기암절벽 지형이 아니라 현무암 암석이 바다로 길게 펼쳐진다.

 

 

 

 

 

해안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거친 바람 소리가 창공의 비행기 소리와 맞물려 귀가 먹먹하기만 했다. 제주 공항으로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낮게 운항하고 있어 소음이 더욱 컸다.


내도동 안내석을 지나자 약간 검은 색을 띠고 있는 모래 해변인 이호태우 해수욕장이 보였다.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지만, 해수욕장에는 서핑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제주의 동쪽 월정리해수욕장, 남쪽의 중문색달해수욕장, 서쪽의 이호태우해수욕장이 서핑의 메카로 각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올레길은 해수욕장 옆 숲길로 이어진다. 해송 숲을 지나 해변 들판에는 이름 모른 야생화가 피어 있다.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려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우리를 열정적으로 환영해주는 모습 같았다.

 

 

 

 

 

올레길에 붉은왕돌할망당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돌담에 둘러싸인 할망당에는 제단과 촛대가 있어 아직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굿과 제사를 지내고 있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굿을 올리는 신령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도로 한쪽 끝에 걸쳐 있어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없애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다.

 

 

 

 

 

올레길이 모두리로 들어서자 광장에는 옛날 놀이를 하는 인물 조각상들이 있어 눈에 띄었다. 모두항 추억의 거리라고 마을에서 조성한 것이다. 굴림쇠를 굴리는 아이, 고무줄 하는 소녀들, 공기하는 소녀들. 팽이치기와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말뚝박기 놀이하는 아이들 등 어렸을 적 해봤던 다양한 놀이를 재현해놓고 있다.

 

 

 

 

 

모두항 공공 마리나 부두에는 요트들이, 일반 부두에는 집어등을 맨 어선들이 정박해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하구 사이 다리를 건너자 제주의 머리라고 하는 모두봉으로 이어진다. 모두봉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산책로는 공사 중이라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바로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산책로에서도 내도ㆍ외도 해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봉 산책로를 내려오자마자 장안사라는 사찰을 만났다.

 

 

 

 

 

사찰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레길에 나선다. 비바람이 몰아치자 우의를 꺼내 입었다. 제주 거센 바람에는 우산은 별로 소용이 없고 우의가 역시 편하다.


비바람이 불어와 잠시 쉬기 위해 올레길에서 보이는 백다방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해안가 절벽에 위치해 전망이 좋은 카페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가까스로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왔다.

 

 

 

 

 

해안 도로를 걷다가 보니 전망 좋은 바닷가에 「모두 선물 카페」라고 새겨진 잔 모양의 조각물이 들어서 있다. 맞은편 카페에서 카페 홍보를 위해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행히 이 지역은 바다 쪽으로 카페와 식당은 없고 도로 건너편에 상가들이 있어 해안 경관을 헤치지 않고 있다. 해안가로 현무암 돌이 길게 깔려 있고 바닷가에는 해녀들의 휴식처인 불턱이 보였다.

 

 

 

 

 

해변 영물 언덕에 이르니 몰래물 쉼터가 나왔다. 몰래물이란 모래나 자갈이 있는 곳에 솟는 물이란 의미인데 제주공항 확장공사 이전까지 인근에 몰래물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몰래물 사람들은 공항 확장으로 여러 마을로 헤어지면서 흩어졌지만 고향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몰래물 향우회 창립기념석을 쉼터에 세웠다.

 

 

 

 

 

바닷가 들판에 크고 작은 돌탑들이 보인다. 마을 사람의 안녕과 액운 방지를 빌기 위해 쌓은 방사탑이다. 방사탑 두 개는 4단으로 쌓아 제법 높았다.

 

 

 

 

 

어영마을에 들어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둘레를 보니 수근연대가 나왔다. 연대는 주로 해안의 경계를 감시하면서 인근과 교신하는 봉수대 역할을 하는데 해안에 돌탑 형식으로 쌓은 것이다. 어영쉼터 화장실 위는 바다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어 인상적이었다.


제주시가 가까워지자 공항 활주로에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리가 더욱 커졌다. 건너편에 제주공항 초소와 활주로가 보였다. 해안 도로에는 오고 가는 차량도 많아 시끄럽고 산만했다.

 

 

 

 

 

소란스러운 공항 도로에서 벗어나자 용두암 안내 간판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용두암이 작아 보여 도로에서 내려가 가까이서 봤다. 그동안 용두암을 여러 차례 봤지만, 이전과 달리 용두암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 와서 처음으로 본 용두암은 마치 용이 하늘을 오르는 듯 기상이 넘쳤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번에 보니 용의 씩씩한 기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해 보였다. 세월이 흘러 파도와 바람에 깎여 용두암이 작아진 것인지 주변 개발로 용두암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지 아니면 내가 나이 들어 이제 용두암의 기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걸으면서 생각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용두암을 지나 바로 용연을 만났다. 용연은 용암 주상절리가 만든 연못으로 물이 깊어 색깔이 시퍼렇다. 계곡 사이 우뚝 선 절벽과 울창한 숲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해안 길이 끝나자 올레길은 제주 도심으로 들어서고 옛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를 만난다. 제주목과 관덕정은 제주를 통치하는 심장부였다.


제주목 관덕정은 병사의 훈련과 무예 수련장으로 조선 세종 때 창건된 목조 건축물이다.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제주의 역사와 함께 하는 곳이다. 근래에 와서 4·3 때 민중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진 곳이지만 주변에는 그에 대한 안내문을 볼 수 없었다.

 

 

 

 

 

입장권을 사서 제주 목사에 들어갔다. 이슬비가 내려 관광객이 거의 없어 한적하지만, 누각 마루에 앉아 있으니 운치가 살아났다. 제주목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모두 철거되고 1991년부터 발굴 작업을 거쳐 현재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제주목 관아는 고려 시대 제주로 편입되기 전 천년왕국 탐라의 왕궁터로 제주 도성으로 둘러싸인 위엄 있는 장소이었지만 지금에는 도성 흔적은 아예 찾아볼 수 없고 몇 채의 건물만 복원되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관아 터 한쪽에는 감귤나무가 심겨 있고 나무로 만든 소 낭쉐가 설치되어 있다. 낭쉐는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있는 황소 그림과 너무 비슷해 보여 낯설지 않았다.

 

 

 

 

 

관아 북쪽 망경루에 탐라순력도 체험관에 들어가 봤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 이형상 목사가 제주를 순회하면서 김남길 화가를 시켜 제주의 명승지와 방어유적지, 사회생활을 그림으로 남긴 40폭의 작품이다.


김남길이 당대 주류 기록화와 전혀 다른 양식으로 제주의 자연과 풍물을 그린 탐라순력도는 후세에 인문 지리 관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1979년 보물 제652호로 지정되었다.

 

 

 

 

 

이형상 목사는 탐라순력도와 제주 박물지인 남환박물을 남겨 제주도를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지만, 제주 목사로 부임하자마자 사찰과 당을 모두 불태우고 유교 교화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제주목 관아에서 나와 17코스 종점인 관덕정 올레 라운지로 향했다. 17코스 완주를 마치고 스탬프를 찍었다.

 

 

 

(2021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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