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비밀일기] 고시원과 오피스텔, 몰랐던 또 하나의 차이 (3)
이곳 공인중개사들에게는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중개보수였다. 실제용도는 원룸이었지만, 건축물대장상의 용도는 근린생활시설이었으므로 0.9%라는 높은 보수 요율이 적용됐다. 0.4% 혹은 0.5%의 요율에 비해 두 배 정도나 높은 것이었다. 게다가 이 곳은 공동중개 없이 임대주 의 직물을 매물장으로 받아 중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므로, 거의 대개는 양쪽 모두로부터 보수를 받았다. 이른바 양타중개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 월세 50만원에 약간의 보증금이 있는 원룸 하나만 중개하더라도 양쪽 모두로부터 받는 중개보수는 거의 100만원에 육박했다. 중개보수라는 측면에서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당시 현지 공인중개사들의 말로는 해당 감독관청으로부터 이곳의 물건들이 비록 원룸이기는 하지만 수수료 0.9% 적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한다. 허긴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에 규정돼 있는 것이고, 물건의 용도를 파악함에 있어 중개의 원칙은 건축물 대장 상에 기재된 대로 따르는 것이므로, 당연한 회신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물이 불법으로 전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이를 중개하고 규정된 보수를 받는 중개사가 문제일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가랑비보다 더 가는 가랑비, 그러니까 이런 비는 무슨 비라 부를지 모르겠다. 어쨋든 그렇게 생겨먹은 비가 내리는 듯 내리지 않는 듯, 말하지만 귀찮아서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그런 정도의 비가 내리다 말다 하던 그런 날이었다.
다른 공인중개사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그 중개사와 나는 함께 점심을 때우러 갈 정도로 서먹함을 씻은 사이였다. 그 사무실에 한 여인과 아이가 들어왔다. 정확히는 엄마와 딸아이였을 것이다.
오늘 당장 들어갈 방을 찾는다고 했다. 짐은 근처에 맡겨 놓았다고 했다. 아마 많지 않은 짐이었나 보다. 그곳은 당장 들어갈 방은 많았으므로 당일 입주를 하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중개사가 집을 보여줄 채비를 하길래, 나는 내가 계약했던 사무실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아이가 문제였나? 갑자기 공인중개사가 부탁을 했다.
"금방 다녀 올테니까, 애하고 사무실 좀 봐줘요."
그러라고 했다. 아마 밖에 날씨가 좋지 않으니까, 아이를 데리고 다니지 않으려는 #공인중개사 의 배려인 듯 했다. 아이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 같아 나는 아이에게 참견하지 않고 휴대폰만 만지적거리며 혼자 놀고 있었다.
20여분 쯤 후에 공인중개사와 애 엄마가 들어왔다. 아마 매우 싼 방이었던 것 같다. 공인중개사가 수요에 딱 맞는 방을 보여 보여준 탓인지, 애 엄마가 빨리 결정을 한 모양이다. 원래는 임대인이 와서 계약을 해야 하지만, 이곳은 하나의 건물에 수십개의 원룸을 가진 임대주들이 많아, 이런 경우에는 아예 임대인이 도장을 맡겨놓고 중개인에게 대리계약을 하도록 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눈깜박할 사이에 계약서가 만들어졌다. 나는 계약서 특약 내용을 어떻게 쓰는 지 한 번 더 볼겸 잠시 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계약 내용에 대한 설명과 확인설명이 비교적 자세하게 이루어졌다. 확인설명의 끝에 공인중개사가 중개수수료를 언급했다. 물론 0.9퍼센트를 적용한 것이었는데, 애 엄마가 생각하기에 조금 많았던 것 같다. 비싼 것 같다고 조금만 깎아달라고 했다. 공인중개사는 이 곳은 근린생활시설이므로 0.9퍼센트가 정해진 수수료율이라고 다시 설명하고 써 있는 대로 달라고 했다.
결국 애엄마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보증금을 이체했다. 중개보수는 잠시 후에 이사 마치고 입금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이와 함께 중개사무실을 나섰다. 아마 짐을 가지러 가는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중개사무실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뭔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나 뿐 아니더라도 그날 그 사무실에 누군가 있었다면, 거의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엄마와 아이의 뒷모습도 그렇지만, 중개보수 0.9%라는 중개사의 음성이 이상하리만큼 기억속에 각인이 되어 버렸다. 아이와 엄마, 그리고 0.9%, 이렇게 각인된 그날의 기억 조각들은 아직까지도 내 머리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은 채 불현듯 나타나곤 한다.
왜 그랬을까? 내 가족의 일도 아닌데, 0.9%의 중개보수가 잘못된 것도 없는데, 그런데 왜 이것이 기억에 남는거지? 잘못된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 마치 뭔가 잘못된 것처럼. 모를 일이다. 난데없는 감수성의 오지랍이었을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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