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비밀일기(5)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은 일이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면서 오피스텔의 중개보수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공부했던가? 그런데 막상 첫 계약서를 쓰는 순간에는, 마치 공부했던 사실 자체를 모두 망각한 것처럼, 프로그램의 계산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니 !
좀 나중 얘기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 프로그램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계약서 작성 프로그램들은 모두 장단점이 있고, 그 프로그램 역시 좋은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날의 일은 나로 하여금 그 프로그램을 계약서 작성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공인중개사 협회 프로그램인 한방을 사용하는데,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왜 그랬을까? 나중에 반추해보니, 수원에서 잠깐 동안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중개수수료 0.9%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는 주거용이지만 건축물 대장상에는 근린생활시설인 원룸들, 그 무수히 많은 원룸들, 0.9%의 중개보수를 적용받던 그 원룸들에 대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머릿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피스텔에 대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첫 계약서라 어쩔까 하다가 이전 수원의 공인중개사에게 검토차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계약서를 폰으로 찍어, 멀리멀리까지 일순간에 전송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을 개발한 세상의 모든 엔지니어들여! 그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중개수수료가 잘못됐어. 오피스텔 주거용은 0.9 아니야. 주거용으로 받아야지. 공인중개사가 그런 것도 몰라?"(그 공인중개사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느 틈엔가 나에게 말을 놓는 그런 사이가 되고 말았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모든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맞아! 주거용 오피스텔! 몇 번인가 모의고사 문제에도 출제됐던, 그 오피스텔! 그런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했던거지? 첫 계약서에 이런 엄청난 실수라니 !!! 오 마이 갓 !!!
침착함만이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게 하리니, 어떤 순간에도 당혹해 하지 말지어다. 나는 조용히 손님들에게 갔다. 확인설명서에 잘못 표기된 곳이 있다고 말하고는 양측 모두의 확인설명서를 회수했다. 받자마자 확인설명서를 모두 문서 파쇄기에 집어넣고는 다시 확인설명서를 출력했다.
손님들은 아직 확인설명서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사실 이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공인중개사가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계약은 무사히 잘 마무리됐고, 이것이 내 첫 계약서 작성이자 오랫동안 잊지 못할 하나의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첫 계악과 관련해서는 다른 얘기거리가 하나 더 있는데,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대출과 관련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적당한 시기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계약은 무사히 마쳤지만, 머릿 속엔 한가지 의문이 자리잡게 되었다. 왜 같은 주거용인데, 근린생활시설은 0.9%의 중개보수가 적용되고, 오피스텔은 주거용 중개보수가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주거용 근린생활시설의 0.9% 중개보수는 정말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것이기는 할까? 나는 공인중개사 협회의 법률자문팀에 질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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