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비밀일기]고시원과 오피스텔, 몰랐던 또 하나의 차이 (4)
나는 그곳 중개사무실을 인수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사정이 생겼기 때문. 다만 잔금을 치루기 전에 사무실을 인수할 다른 공인중개사가 있었기로, 중개수수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손실 없이 그곳을 양도할 수 있었다.
몇 달 후에 나는 다른 곳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전개될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 자기 이야기일 것이라 짐짓 예단할 수도 있기 때문. 새 사무실은 이전 잠시 맛보기를 했던 그 중개사무실과는 주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곳은 원룸, 빌라, 아파트, 상가 등 모든 물건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고, 중개사들간의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치열한 그런 곳이었다. 다만 이곳의 지형 역시 상당히 복잡한 편이어서 나는 처음 며칠 동안을 지형파악하느라 보내야만 했다.
당시 나는 첫 개업이었고, 아직 풋내기 공인중개사였으므로, 한동안 중개를 해내지 못했다. 보름 이상이 지나서야 다른 공인중개와 공동중개를 했는데, 상대 공인중개사의 물건이었으므로 그 중개사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는 그저 손님지 중개사로서 도장을 찍는 일 정도만 하면 됐다. 그 후 한 달여 동안 두어건의 중개가 더 있었는데, 모두 마찬가지였다. 나는 손님지였고, 그래서 계약서를 직접 작성할 일은 없었다.
개업한 후 두 달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분양오피스텔의 계약자 물건을 전세로 중개할 일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오피스텔을 분양받겠다고 건설회사와 계약한 임대주의 물건을 전세 임차인에게 중개하는 케이스였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중개보수를 받는 이른바 양타의 물건이었다. 전세금이 컸기 때문에 중개보수 또한 상당할 터였다. 계약을 하겠다는 임차예정자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직접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계약에 내 나름으로는 큰 중개가 성사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공동중개망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첫 계약을 그 프로그램으로 작성하기로 했다. 대부분 프로그램의 빈칸을 채우거나 필요항목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전 공인중개사에게 몇 번의 실습을 거쳐 계약서 작성을 배운 경험도 있는 터였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첫 계약서이었으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오피스텔이므로 계약서 상 용도는 업무용이고, 확인설명서 상의 실제용도는 주거용, 거침없이 척척 적어 나갔다. 마지막 귀절은 중개수수료를 계산하는 곳이었는데, 물론 프로그램이 잘 알아서 했다. 프린터 출력을 하고 몇 번씩 잘못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읽어봤다.
아뿔사! 여기에 마가 끼어 있었다. 사실은 프로그램의 미진한 부분이기도 했다.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의 오피스텔로서 전용입식 부억,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 등을 갖춘 것은 #업무시설 이 아닌 주거용 시설의 수수료를 적용해야만 했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은 이를 무시한 채 0.9%로 계산을 해 놓았고, 나 역시 별다른 생각없이 프로그램이 잘 알아서 계산했거니 했던 것. 실로 위험천만한 순간이 전개되려는 참이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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