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과연 개, 돼지인가? (상)

조진태의 인문학 이야기

대중은 과연 개, 돼지인가? (상)

조진태 / 전임기자

 


 

대중은 과연 개, 돼지인가?

 


 

 

그림은 왜곡된 체스판이라고 불리는 착시 현상입니다. 작은 정사각형들로 구성된 체스판인데, 가운데로 갈수록 직선이 곡선으로 변하고 정사각형도 볼록 튀어나와 보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림엔 곡선과 휘어짐이 없습니다. 개체의 속성과 집단의 양상이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개개인이 모여 집단과 대중을 이룰 때, 대중은 단순한 개체의 총합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개체의 특성과는 다른 어떤 추상적인 속성을 띄게 될까요?


개인들은 군중 속에서 서로 뒤섞이고 합해지면서 개별성이 소멸되어가고 일정한 집단 의지에 편승하면서 때로 무분별한 광기를 표출하는데요, 이는 인터넷 상에서 쉽사리 확인됩니다. 한번 집단 비방이 시작되면 일제히 한 목소리를 냅니다. 악성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 그 수위는 급속히 높아져서 다른 목소리가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말도 섞어 보지 않은 사람을 마치 제 부모를 죽인 원수처럼 대하니까요어떤 댓글은 당사자가 본다면 공포심마저 불러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보면, 멀쩡한 교수, 의사, 회사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아무런 통제 없이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을 모두 맡겨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선전과 선동이 난무하고, 경제는 투기판이 되어서 거품이 시장을 뒤덮고, 저질 문화가 판을 치고, 인터넷과 사회적 연결망(SNS)은 패거리 문화로 변질되어 상호 욕설과 비방으로 들끓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실제로 그런 현상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파상은 이에 대해 사람이 혼자 있을 때 갖고 있는 자질, 즉 지적인 창의력, 자유의지, 분별 있는 성찰력, 심지어는 통찰력 등의 자질이 그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이면 일반적으로 곧 사라진다.”고 단언합니다.


이런 대중에게 시장을 맡긴다면 그것이 온전할까요, 개개인의 이기심이 사회적 부를 실현기는 커녕 대공황을 몰고 온 1930년대가 대중의 취약성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보다 앞서 1634년 튤립을 소유하려는 네덜란드인들의 열망은 결국 튤립 40뿌리의 가격을 10만 플로린까지 올려 놓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황소 830마리 정도를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귀족, 도시민, 농장주, 기계공, 선원, 심지어 굴뚝 청소부까지 튤립 투기에 나서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일부는 부자가 되었지만 대다수는 튤립값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즉 대폭락하면서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대중이 만들어내는 대중 문화 또한 온전할 리 없습니다. 대중 가요만 보더라도 트롯, 뽕짝이든 포크송이든 랩송이든, 모두 한결같이 사랑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는 늘 재벌이 등장하고, 그 범위는 이제 외계인과 도깨비로 확장되어 지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이고 때로 외설적이기도 한 대중문화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화 상품의 시대에, 대중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대중 예술은 거대한 자본이 개입해서 부단히 상업적인 이윤 창출을 추구하고, 대중들은 무비판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이를 수용한다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는 정치를 대중에게 맡길 경우, 그 방향은 틀림없이 참주정치(독재 정치)로 흘러간다고 예언합니다. 독재자들은 교묘한 말로, 다수를 차지는 대중들을 설득하는데,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나누어 준다는 식의 선동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교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수의 대중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권력을 잡은 이들은 부자의 돈을 빼앗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주머니를 채운다는 것이지요. 대중에게는 찔끔 나주어 주고요.


독일의 히틀러는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거리에서 끊임없이 나치 휘장을 흔들어대고, 노래를 불러가면서 열광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정당한 선거를 통해 집권을 했고, 이후 그 권력을 이용해서 영구 집권을 시도한 것이지요. 따라서 대중은 정치 현실에서 기껏해야 우매한 다수나, 혹은 고매한 혁명의 기치를 내세워도 결국 광기어린 폭력 집단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가능하게 됩니다.


나치 정권의 선전을 담당했던 괴벨스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유명한 말로 대중을 매체가 언제든 선동할 수 있는 개와 돼지로 전락시킵니다. 괴벨스는 라디오를 싼 가격으로 전 국민에게 보급하지요.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이 게시물은 청원닷컴님에 의해 2021-02-12 00:33:31 기자방 - 기사올리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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