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평전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반 고흐 평전

백재선 / 전임기자

2단 편집에 1천 페이지에 달하는 화가 반고흐의 평전을 한 달에 걸쳐 읽었다.

 

스티브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공동으로 쓴「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흐흐」라는 책이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틈틈이 읽고서 마침내 완독했다.

 

저자들은 풀리처 수상자들답게 오랜 연구를 통해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37년의 파란만장한 반고흐 삶을 상세히 서술한다. 고흐가 남긴 편지와 그림은 물론 친지들의 글, 그가 읽은 책과 좋아한 화가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고흐가 지닌 그림에 대한 영감의 원천과 에너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준다.


저자들은 책에서 고흐의 그림에 대해 직접 평가하거나 그의 삶을 미화시키려 하지 않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한다.고흐는 좌절과 고통 속에서 가족과 주위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10대에 집을 나와 영국, 벨기에,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전전하면서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사는 이주민 생활을 해왔다.화랑 점 점원, 책방 직원, 보조교사, 교회 전도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지만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

 

책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끊임없는 불화와 갈등,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피해 의식과 강박 관념, 잦은 사창가 출입에 따른 성병 감염, 희박한 경제 관념과 그로 인한 테오 동생에 대한 지나친 의존적인 생활 등 고흐의 삶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들은 이처럼 상세한 기술을 통해 고흐에게 쓰여진 예술적 신화와 판타지를 걷어내고 책 제목처럼 반 고흐라는 화가 이전의 핀센트 판흐흐라는 한 인간을 적나라하게 해부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저자들은 마치 고흐의 주치의처럼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소외되면서 망상과 집착에 빠진 그의 정신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해준다. 저자들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독자들은 반 고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고흐 작품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고흐는 실제 정신이 이따금 작동을 멈추는 잠복성 정신적 간질 병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고통을 겪었지만, 정신이 멀쩡할 적에는 그림을 그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고갱과의 갈등 끝에 자신의 귀를 자른 후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지만, 병원에서도 줄기차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이프러스 나무>,<별이 빛나는 밤> 등의 대작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삶을 마쳤던 프랑스 오베르에서는 정원과 밀밭을 찾아 거의 하루 걸려 그림을 그렸다.

 

저자들은 고흐 그림의 비틀린 형상과 충격적인 색채를 병든 정신의 산물이라고 묘사하는 비평가도 있지만, 고흐에게서 미술은 그의 인생을 좀 더 진실하고 잘 드러내는 기록 그 자체이고 그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림을 통해 구원의 길을 찾고자 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책은 고흐가 실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고 전한다.

"나는 내가 느낀 것은 그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것을 느끼고 싶다. 나는 나의 그림과 같다"

 

고흐가 숱한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린 것은 인간 승리이자 진정한 예술혼이라고 평가를 하고 싶다. 나는 오래전에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과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원본 작품들을 보고 거칠고 두터운 붓 터치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격렬하고 넘치는 붓질은 자신의 영혼을 쏟아내어 구원을 갈구하는 고흐의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번에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생 테오의 죽음과 반 고흐 죽음의 의문점이다.

 

동생 테오가 평생 형 고흐를 보살펴왔고 그런 형이 죽자마자 반년 만에 세상을 뜬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동생도 형처럼 성병에 걸려 육체적으로 허약해진데다 형의 죽음으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정신병을 크게 앓고 고통을 받으면서 삶을 마감한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테오는 결혼과 아들 양육에 따른 가족 부양과 사업 부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형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심적으로 더욱 고통을 받게 되었다.

책의 보론에서 반고흐의 죽음이 세간에 알려진 대로 자살이라기보다 르네라는 17세의 철부지 소년에 의한 타살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고흐는 항상 자살을 죄악으로 인식하고 죽기 전에 자살을 암시하는 어떤 암시도 남기지 않았다. 당시 검안에 참여한 의사들도 총의 발사 각도가 밑에서 위로 향했고 먼 거리에서 발사되었다는 점을 들어 총살에 의한 자살 유형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고 한다.

 

르네 소년이 우발적으로 고흐에게 총을 발사해 치명상을 입혔으나 고흐는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자초지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냥 삶을 마쳐 오히려 순교자가 되었다고 저자들은 평가한다.

 

반고흐 죽음과 관련한 의문점은 얼마 전 국내에서 상영되었던 <러빙 빈센트>라는 디지털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화는 반고흐 죽음에 대해 의아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이번에 책을 보고서 타살을 암시하는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반고흐의 삶과 그의 그림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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