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 평전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함석헌 선생 평전

백재선 / 전임기자

함석헌 선생 평전을 읽고 나니 백발의 청년 백기완 선생의 부고를 접했다. 함선생도 백선생처럼 백발에 흰 두루마기를 휘날리면서 포효하셨던 분이다. 암울한 시대인 70·80년대 우리는 함석헌·문익환·계훈제·백기완이라는 걸출한 在野 인사들이 있어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


내가 함선생을 직접 뵌 것은 80년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시국 강연회 자리였다. 한복 두루마기 차림에 수염이 덥수룩한 함선생의 모습을 멀리서 보니 영락없는 시골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함선생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당시 집권을 도모하려던 군부세력을 매섭게 꾸짖던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남는다.

 

함석헌 선생의 강연을 듣고 그가 발행한 『씨알의 소리』를 이따금 사서 읽었다. 함선생의 글은 구어체 표기라 문어체에 익숙한 나에게 낯설었다. 80년대 말 6월 항쟁 이후 군부 독재 타도에 대한 열망이 높아질수록 비폭력 불복종을 호소하는 함선생의 목소리는 크게 들려오지 않았다. 함선생이 1989년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의 기억에 점차 잊혔다.

 

최근 들어 철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함석헌 선생이 현대 한국 철학사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글들을 접하면서 함석헌 평전을 찾아 읽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함석헌 평전은 3종으로 김용준 교수·김삼웅 작가·김성수 연구원이 각각 쓴 것이다.

 

김삼웅 작가의 평전은 함선생이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나선 이후 불의에 맞선 저항인의 삶을 본격 조명해 준다. 함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평양고보생 신분으로 3.1 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독재 권력에 맞선 저항인이었다. 그는 치열한 저항 정신으로 독재자들과 맞서 행동하고 싸웠지만 늘 평화를 염원한 평화주의자였다.

 

김작가는 “함석헌을 시대의 아웃사이더로 지배보다는 자유를 택한 野人(들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속박이나 규제에 얽매인 삶이 아닌 자유롭고 해방된 삶을 추구했고, 자신의 신념을 늘 일상의 삶에서 일치시키려 했던 사람으로 기술한다.

 

김성수 연구원은 신학자로서 함석헌의 종교 지도자 삶을 본격 고찰한다.

 

김연구원은 함석헌의 부음 소식을 듣고 철도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함석헌을 본격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퀘이커 교인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다. 김연구원은 영국에서 귀국한 후 자신의 논문을 보완해 평전을 집필했다. 김성수의 평전은 함석헌의 인생 여정과 사상 변화를 총괄적으로 다루면서 20세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운동의 기수이자 종교 개혁가로서의 그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김연구원은 “함석헌이 현실주의자라기보다 이상주의자였고 세속에서의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보를 추구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함석헌의 가치관은 그의 생애와 사상에서 드러나는 대로 이타적 사랑, 너그러움, 검소함, 정직,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용기 등 인간성의 핵심을 도덕성에 두었다고 방점을 둔다.

 

김용준 교수는 젊었을 때부터 가까이 뵙고 모셨던 함석헌 선생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소상히 소개한다. 김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이라는 책에서 함선생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소박한 행동과 태도를 여과 없이 기술한다.

 

함선생이 한때 가까운 여성과 빚어졌던 스캔들에 대해 지인들에게 용서를 빌었던 사실을 김교수는 책에서 알려준다. 또한 함선생이 그와 달리 배우지 못했던 부인이 병고에 쓰러지자 병자 수발을 마다하지 않았던 모습에서 말과 행동을 일치하려던 삶의 자세를 들려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재야 세력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정권에 의해 서울평화대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것과 관련해 함선생은 병상에서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나 싫어하는 사람들과는 악수도 하지 말란 말이냐"라고 단호하게 말씀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김교수는 “내 평생에 함석헌이라는 한 인격을 만났다는 사실은 출생 다음으로 큰 사건이었다”면서 “나 자신의 인격도 함석헌이라는 존재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함선생에 대해 하염없는 존경을 표한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의 근·현대 시기에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는 1901년 조선왕조 시대에 태어났지만,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했으며 노자와 장자 등 동양 철학을 부지런히 연구했다. 그는 결코 어떤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시대에 맞게 자신의 생각과 시각을 넓혀 나갔다,

 

함선생은 동서양 사상을 섭렵하고 나서 비폭력주의와 민주주의 등 당대의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고 실천해 나가려 했던 대사상가였다. 그는 한국인의 시각 혹은 동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서구 기독교의 의미를 되살리고 해석하면서 서구 기독교와 동양 철학을 사상적으로 융화시키려 했다.

 

함석헌 선생은 또한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도 정의의 싹을 틔우기 위해 불의와 싸웠던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혹독한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에 맞서 일선에서 싸운 실천운동가였다. 여러 차례의 구속과 감금으로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이 엉망이었지만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때로는 책상에서, 때로는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웠다.

 

철학자 유현상은 함석헌의 삶에 대해 “그는 평생 부당한 권위주의와 독재에 맞서 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았다”면서 “개인과 지역,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전 우주의 생명력과 평화적 삶을 추구했다”고 강조한다.

 

자기 이해를 앞세우지 않고 늘 기층 민중인 씨앗을 대변하려 했고 씨앗들과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함석헌의 정신은 사회가 민주화되고 권위주의 정치가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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