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나그네(김종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오름 나그네(김종철)

백재선 / 전임기자

제주 오름에 관심을 두고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 대한 인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오름 나그네를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에서 찾아보려고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오름 나그네는 제주 출신 김종철 선생이 제민일보에 연재한 기획물이 그가 죽기 20일 전 19951월 단행본으로 발간된 책이다. 책이 나오자마자 저자가 세상을 뜨면서 책은 오래전에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웠다.

20204월 그의 부인과 제자ㆍ후배들이 힘을 합쳐 25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동네 도서관에 들어온 책을 읽게 되었다.

 

김선생은 뭍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제주 사람들에게는 잊혀가고 있는 오름들을 직접 탐방하고서 답사기를 썼다. 그는 무려 330개의 제주 오름을 5~6회나 찾아가서 조사했다고 한다. 직접 다녀왔던 330개의 오름 중 260개의 오름에 대한 답사기를 책에 남겼다. 그 당시는 물론 최근까지만 해도 제주 오름에 대한 본격적인 안내서가 없는 터라 오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했다.

 

저자는 단순히 오름 지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름에 얽힌 인물 역사 문화까지 소상히 알리는 데 헌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오름 이름과 지형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말을 찾기 위해 무려 국어대사전 5권을 닳아 떨어질 정도로 독파했다고 한다.

 

오름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 풍광에 대한 그의 담백하고도 아름다운 묘사는 독자들에게 많은 감흥을 불러일으켜 오름 애호가로 만들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오름의 자연과 풍광을 있는 그대로 알려 후세 사람들이 잘 보전해줄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책에는 골프장을 짓는다고 오름의 입구를 깎아버린 사진이 그대로 실려 있어 보는 이의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책은 답사기와 함께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오름 풍광 모습과 진귀한 야생화들을 사진첩으로 담고 있어 화보처럼 보기가 좋다.

 

김종철 선생은 제주 토박이로 원래 유복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가족들을 하나하나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다. 그는 고독함을 느낄 때다 한라산 등정에 나섰고 사회인이 되어 결혼하고서도 한라산 중간산에 삶의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1951년부터 한라산을 등반하기 시작하고서 평생에 걸쳐 1천 회나 한라산을 올랐다. 그는 산악인이지만 교육자이나 언론인으로서 지역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번 개정판에 실린 부인의 발간사, 그리고 제자후배들의 회고문을 보면 김종철 선생의 치열한 삶에 대해 반추해볼 수 있다제자 현임종은 4.3 당시 김선생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면서 오름에 미친 스승이 병고에 시달려 일찍 삶을 마친 것에 대해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후배 김종민 기자와 오희삼 작가는 매사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배려했던 그의 훌륭한 인품과 정신을 회고한다. 김종민 기자는 자신이 김종철 선생의 품위 있고 아름다운 문체에 빠져 있다고 고백한다. 오희삼 작가는 오름 나그네야말로 제주도의 역사 인문·자연·민족 생태가 총망라된 책이라고 헌사한다.

 

아내 김순이는 김종철은 내면에 누구도 헝클어뜨릴 수 없는 전아함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회고하면서 아름답고 소중한 오름을 진정으로 사랑해주고 아껴달라는 마음에서 답사기를 썼을 것이라고 고인을 대신해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김종철 선생을 생각하니 不狂不及(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으랴)이라는 한자성어가 떠오른다. 그는 제주 오름에 미쳐 오름 나그네라는 필생의 작품을 후세에 남겼다.

 

개정판에 실린 아내 김순이의 선작지왓라는 제목의 시는 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선작지왓은 그가 죽어 산화한 백록담 남벽 아래 고원 지역이다.

 

가장 쓸쓸한 바람이 살고 있는

이 고원(高原)

한가지 소원을 묻어두었다

산 넘어가는 구름

걸터앉아 쉬는 바위틈마다

봄눈 속에 피어난 산진달래

꿈에도 보인다

그 팍팍한 슬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열심히 피고 지는 까닭에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는데

가장 소중한 것

가슴에 묻어도

슬며시 빠져나와 깊은 잠 흔드는

더 이상 쓸쓸할 수도 없는

이곳에서

또 한 세상 살리라

그리움의 발길 헤매리라

 

이 글은 백재선 기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daul79)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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