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래/크리스 헤지스』를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미국의 미래/크리스 헤지스』를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자본주의의 미래는 정녕 없는가.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 내 빈부 격차와 불평등 심화는 미국을 병들게 한 지 오래다. 신유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민주주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미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병들어 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 언론인 크리스 헤지스는 『미국의 미래』라는 책에서 쇠망. 헤로인. 노동. 사디즘. 증오. 도박. 자유라는 7개의 키워드로 보는 미국 파멸 보고서를 내놓았다.


책은 기업자본주의 하에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을 조명하고 실제 미국인의 삶에서 7개 키워드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로만 쓴 것이 아니라 직접 삶의 현장을 취재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저술한 것이다. 저자는 폐쇄된 공장, 포르노 스튜디오, 카지노 등 미국 사회의 파멸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피폐해진 민중들을 만났다.


저자는 현장 르포와 인터뷰 작성에 그치지 않고 역사, 정치, 경제, 노동, 기후, 문화에 관한 과거 철학자와 현재 지성인들의 견해를 참조하면서 오늘의 미국과 앞으로의 미국에 대해 언급한다.


1장 『쇠망』이라는 키워드에서 미국 내 제조업의 침몰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사회 기반 시설과 정리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소 도시의 실태를 알려준다. 한때 전기도시라고 불렸던 스크랜턴은 대다수 공장이 방치된 채 버려져 있고 노동자들은 실직으로 피폐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스크랜턴과 마찬가지로 과거 제조업 기반 도시에서 엘리트 전문가와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퇴직연금 제도와 급여 외 수당을 받는 중산층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저자는 스크랜턴을 그대로 확대하면 그것이 오늘의 미국 모습이다고 단언한다. 중산층의 붕괴로 미국 내 1만9천개 지자체 대부분이 재산세 수입이 줄어들거나 정체된 반면에 지출 경비는 상승하여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장 『헤로인』 편에서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당사자들 이야기가 실려있다. 마약과의 전쟁이 선포된 지 수 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50세 이하의 미국인 가운데 마약 과용으로 죽는 사람이 심장병, 암, 자살 혹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


반면 마약중독치료센터와 약물치료병원에서 경찰, 감옥에 이르기까지 마약으로 이익을 취하는 마약 관련 산업은 갈수록 융성하면서 국가와 중독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서 엄청난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3장 『노동』 편에서는 백인 노동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삶의 기반을 잃고 있는 실태를 보여준다. 미국 내 자살자 통계에서 남성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백인들의 높은 자살률은 실직, 불안한 취업, 결혼 실패, 사회적 응집력의 상실 등이 누적된 불이익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에 일어난 고졸 출신의 백인 노동자층의 붕괴는 치명적인 절망감을 조장하는 사회병리 현상을 낳고 있다.


4장 『사디즘』 편에서는 미국 내에서 이미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된 사디즘의 실태를 드러낸다. 벤처자본가‧은행가‧신용카드사들이 포르노 산업에서 먹이사슬로 연결되었다.


포르노 산업이 전체 문화에서 여성성을 강탈한 지 오래되었다. 폭력과 이익을 위한 인간 상품화에서 기업 자본가들의 전형적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여자들을 대규모로 인신매매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가속시키고 있다.


5장 『증오』 편에서는 미국 내 만연하는 증오 범죄를 다룬다.


인종‧종교 차별로 빚어지는 폭력 사태는 때로는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다양한 집회와 행사를 통해 그들의 문화에 동화시키고 폭력 행위를 실행하도록 훈련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막연히 감염된 불안감으로 인해 그들이 뿌리내렸던 공동체뿐 아니라 전통, 신념, 의식에서 단절돼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세계 자본주의에 의해 잉여로 취급받으며 냉정하게 버려지고 있다.


노동자들과 하류층 사람들은 그들을 폐기 처분한 테크노크라시의 세계에 대해 원초적 분노를 갖게 된다. 이러한 분노는 토착주의, 신파시즘, 지하디즘, 기독교 우파, 알트라이트 민병대, 안티파의 무정부적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6장 『도박』 편에서는 트럼프가 만든 애틀랜틱 카지노 타지마할 몰락과 관련한 도박꾼들과 카지노 종사원들의 피폐해진 삶을 보여준다. 미국 전역에는 900개소의 카지노가 있으면 연 37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2017년).


트럼프는 8억2천만달러의 대출을 얻어 초호화판 타지마할 카지노를 건설했으나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다. 트럼프가 손을 뗀 카지노는 시설물의 노화로 인해 거의 폐허 지경에 이르렀다.


카지노 산업의 몰락으로 인해 애틀랜틱 시티는 수천 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수백만 달러의 세금이 줄어들면서 파산했다. 트럼프를 포함해서 모든 카지노 거물들의 퇴폐적 윤리가 어두운 미국인의 심장을 망가뜨리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7장 『자유』 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지난 40년 동안 기업 권력의 끊임없는 공격에 무너진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와 제도들을 다룬다.


자유주의적 비영리 단체들도 단지 이름만 남고 기업화된 정당의 연약한 부속물이 되었을 뿐이다. 민주주의 변화를 만드는 진정한 엔진인 진보적이고 투쟁적 운동들이 탈산업화, 다수의 반노동법과 정부의 시장 규제 완화, 기업의 공‧사립 기관의 장악, 공산주의자 마녀사냥과 매카시즘의 다면적 공격 등으로 점차 말살되고 있다. 특히 사법제도를 왜곡시키고 경찰이 가난한 자들에게 벌이는 공격적 전쟁은 트럼프 정권하에서 더욱 악화되었다.


기업국가는 사회 불평등 혹은 백인 우월주의를 해결하려고 시늉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체 이익을 위해 사회를 통제하고 저항하는 자를 짓누르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기업국가는 이미 대중으로부터 신용을 잃고 위기에 처해 있다. 시민들에게 자유시장, 세계화, 낙수효과와 같은 장밋빛 약속은 모두 거짓이고 탐욕을 채우는 공허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섬뜩한 기분이 내내 들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폭력적이고 퇴폐적인 장면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책에서 드러난 말기적 현상은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지나치게 확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는 미국인들의 삶을 피폐화시키고 미국의 성장 동력을 잠식하여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더욱이 부패한 기성정치인들에게 버려진 민중을 부추기고 자국 중심적 초국가주의와 우파적 포플리즘을 주창하는 정치가들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사회 통합과 발전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실업, 자살, 자산, 포르노 산업, 도박, 마약, 거짓과 증오심의 확대, 종교적 말세론 등 자본주의의 말기적 현상과 민주주의 정치 위기는 우리 사회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오고 있어 손을 놓고만 볼 수 없다.


저자도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신자유주의 영향 아래 미국이나 다른 산업국가처럼 한국의 중산층도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면서 “현재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중의 고통과 희생이 사회지배층의 그릇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처럼 신자유주의 정책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의 민중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도 자본주의 실패와 테크노크라시와 정치가들의 실수를 그냥 바라만 보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 지구적 새로운 출발의 희망은 소수 부자권력층에서 힘을 되찾아오는 데 있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힘없는 다수들이 깨어나서 연대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제 불평등 해소와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대중 스스로가 소득 분배와 공공복지 확대에 관심을 갖고 실제 정책 집행에 있어 정치가‧기업가‧기술관료자들을 이끌 수 있도록 민주주의 정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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