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화법과 대통령의 언어 (2)
“양국간 해저터널 공사에 대한 귀국의 제안을 저희로서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공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제안을 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중한 문구는 상대국가의 양국간 해저터널 공사 제안을 수용한 것일까?
유럽연합(EU) 정상들의 중국 방문이 줄을 이루고 있다. 지난 해 11월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총리의 첫 방문이 있었고, 12월 초에는 샤를 미셸(Charles Michel) 유럽 정상회의 의장이, 올 3월 말일에는 페드로 산체스(Pedro Sanchez) 스페인 총리가, 그리고 연이어 지난 달 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각각 중국을 방문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방문에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회 의장이 함께 했다. 벌써 5명의 EU 지도자급 인사들이 중국을 방문한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를 무기화하면서까지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반면 중국은 미국의 기축통화를 흔들면서 맞서고 있다. 하필 이 민감한 시기에 친미 EU정상들의 연이은 중국방문이 미국으로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방문의 명분은 정치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가 핵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말려줄 나라로는 중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슐츠 총리는 중국방문을 통해 “중국은 핵무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것이 러시아를 향한 얘기인지는 불분명하다. 언감생심 핵무기 사용시 중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얘기는 흔적조차 없다.
샤를 미셸 의장이 중국을 방문하자 중국은 “EU의 평화적 중재노력을 지지한다”며 화답했다. 물론 이 문구는 중국이 중재노력을 하겠다는 의사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같은 달 하순 중국은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을 했다. 게다가 EU가 평화적 중재노력을 했다고? 언제?
산체스 총리는 그나마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을 이끌어 냈다. “우크라이나는 주권(Sovereign) 국가이며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것. 다만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과 동일한 의미의 주권을 의미하는 것인지, 온전한 영토 범위 내에서의 존재할 권리를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일하게 중국측의 행동을 이끌어낸 편이다. 시진핑 주석에게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해줄 것을 요청했고, 시진핑 주석은 이에 대해 거절도 승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6일 중국과 우크라이나 양국 정상간의 통화가 있었다.
통화의 의도는 분명하지 않다. 단순히 마크롱 대통령에게 인사치례를 한 것일 수도 있고, 이란과 사우디의 화해 중재로 몸값이 오른 만큼 차제에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이 러시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의 여부가 EU-중국간 관계를 결정할 것”이라는 라이엔 의장의 발언이 고려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라이엔 의장의 발언은 매우 강경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는 중국에 160대의 에어버스 항공기를 수출키로 합의했다. 에어버스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3개국이 투자한 항공기 제작업체다.
이미 슐츠 총리 방문시 140대 항공기 수출 합의를 한 바 있는데,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으로 대수를 늘리면서 이를 확실시한 셈이다. 여기에 헬리콥터 50대가 추가됐다.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해외 풍력발전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합의했고, 알스톰 산업장비에 대한 구매 얘기도 오갔다.
프랑스는 중국선박 그룹에 컨테이너선 16척을 발주했다. 에어버스는 중국 천진공장에 추가투자키로 하는 등 양국간 꿀같은 얘기가 오갔다. 이쯤 되면 동행했던 라이엔 의장의 강경발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싶을 정도다.
결국 프랑스는 이번 방문에서 에어버스, EDF, 알스톰을 포함해 주요기업 임원진 60여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동반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온 셈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포스트에 기고되었던 글입니다. 기고된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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