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달러 패권, 새로운 통화질서 앞당겨지나 (상)
2016년 이래 중동지역 최대의 앙숙이던 이란과 이라크가 지난 달 10일 화해했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SVB의 은행업허가를 취소했다. 정치적 사건과 경제적 사건, 이들 두 사건 사이의 관련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고금리 강달러 정책은 물론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주된 목적이었다. 목적의 순수성까지 의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을까?
미국으로서는 너무 일찍 터져버린 SVB 파산이 아쉬웠을 것이다.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나라 밖 어디에선가 금융위기가 먼저 터졌더라면, 자국의 인플레이션의 진정은 물론,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화를 재확인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지만, 어떤 면에서 SVB의 투자는 모범적이었다.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급작스런 금리인상과 더 급작스런 뱅크런이 아니었더라면, SVB는 모범적인 성공을 이룬 은행이 됐을런지도 모른다.
사실 SVB가 파산한 것은 국채에 투자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채권이 주로 10년 만기의 장기(Long-Term)물이었데 더 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기 시작한 것은 ‘10년 만기’가 아니라 ‘미국 국채’ 쪽이다.
바이든 정부가 ‘예금 전액보호’라는 전례없는 조치까지 내놓으면서 사태의 신속한 진화에 나선 것은 단지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금융위기, 인플레이션, 이 모든 것보다도 미국이 더 중요시하는 것, 바로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미국으로서 어떤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절대적 과제랄 수 있다.
하필 미국 국채에 집중투자했던 SVB의 파산으로 금리인상 의도의 절반은 방향을 반대로 틀어버렸다. 달러화의 가치를 세계 경제주체에 각인시키고 싶었겠지만 결과는 오히려 미국 국채가 이제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상에도 금이 가고 있다.
사실 SVB 파산이 아니더라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상은 지위는 조금씩 흔들려 왔다. 최근 그 속도는 심상치 않게 빨라지고 있다.
지난 1월 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국 대통령은 가칭 ‘수르’라고 불리는 공동통화 창출계획을 확인했는데 이는 남미 공동통화 창출을 위한 준비단계다. 남미국끼리의 거래에 굳이 달러를 개입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같은 달 러시아와 이란은 금가치를 담보로 한 스테이블 코인의 개발 논의를 시작했다. 두 대표적 반미국가들이 불태환 화폐인 달러의 약점을 콕 집어 미국의 심사를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친미국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달 15일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과 인도 두 나라 중앙은행은 양국간 거래시 인도의 디지털 화폐 이용을 촉진키로 하는 협약에 서명했다. 이에 앞서 양국은 석유를 제외한 양국간 결제통화로서 루피화 사용을 추진한 바 있다.
인도중앙은행(Reserve Bank of India)이 아예 지난 해 자국의 11개 인도은행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달러사용이 어려운 러시아와 스리랑카, 모리셔스등 달러부족 국가들에 대해 루피화 결제업무를 허용함으로써 자국통화 위상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비즈니스포스트에 기고되었던 글입니다. 기고된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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