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C 출구전략과 고단한 일본(하)

YCC 출구전략과 고단한 일본(하)

청원닷컴 / 청원닷컴 편집인

지난 30여 년 동안 일본은 국민 전체가 디플레이션 적응훈련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낮은 구매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기업은 값싼 가성비의 제품들을 만들어 파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이 배기량 1000cc의 제법 큰 경차를 만들 때 일본은 배기량 660cc의 작고 저렴한 경차를 만들었다. 우리가 값비싼 모델의 스마트폰과 백색가전을 쏟아내는 동안 일본 기업들은 100엔샵에 맞는 제품들로 구매력 낮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는데 기여했다.


일본이 서둘러 YCC 완화에 나선 데에는 지난해 연말 일본의 CPI가 3.8%까지 상승한 것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의 5%에 비해 낮은 수치이지만, 일본 경제가 느끼는 체감은 우리보다 크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왔기 때문이 아니다. 낮아진 구매력이 감당하기에는 그 수치마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로금리는 일본 좀비기업의 양산에도 기여했다.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의 보고에 따르면 사업이익으로 이자부담을 충당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기업을 운영하는 일본 기업의 수는 2020년 말 기준 16만5천 개에 달하고 있다.


IMF는 우리에게 아픈 과거였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의 체질을 단련하는 계기가 됐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도산하고, 엔화를 빌어 돈벌이에 치중하던 종금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당시 BIS 8%를 맞추지 못해 문을 닫던 한국의 은행들은 2021년 평균 BIS 16.5%를 유지하는 체질로 개선됐다.


YCC는 양적완화를 통해 일본인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할 목적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빚더미 일본’이 됐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들면서 기업이 맞아야 할 매를 말려왔던 일본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일본은행은 일본정부의 자회사라던 아베 전 총리의 발언은, 일본은행을 보는 일본 정치인들의 시각을 요약해주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모기업이 파견한 아베노믹스의 집행대행인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몸값은 올랐고 일본인의 몸값은 정체했다. 한국에는 건강한 인플레이션이 있었고 일본에는 멈춰선 물가가 있었다.


비싼 인건비의 나라는 고부가가치의 나라다. 비싸게 만들어 팔고, 싸게 수입해서 양껏 쓰고, 해외에 나가 돈을 쓸 수 있는 나라다. 돈을 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 길을 걸어왔고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비이커의 따뜻한 물 속 편안함에 길들여진 일본경제가 금리정책의 전환을 통해 차가운 바깥 세상으로 튀어 나오게 될지, 혹은 그대로 폭삭 삶아진 상태가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우리의 미래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는 그동안 서로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제 일본은 우리에게 따라가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의 스승인 반면 일본에게 우리는 보고 배워야 할 롤모델이 되었다는 점 하나만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비즈니스 포스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비즈니스 포스트의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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