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해설] 두 전직 대통령이 한일해저 터널에 찬성했었다고? - 조선일보의 헛발질
두 전직 대통령이 한일해저 터널에 찬성했었다고? - 조선일보의 헛발질
A 국가가 B 국가에게 공동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러자 B 국가가 외교문서를 통해 A 국가에게 다름과 같은 서한을 전달했다.
“귀국의 프로젝트 제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로서는 영광입니다. 저희 역시 귀국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문서는 A국가의 제안을 수락한 것일까? 외교적 화법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놀라운 일일 수도 있지만 사실 위와 같은 표현은 ‘거절’의 의사표시다. 외교적 언어는 항상 저런 식이다. 이른바 단어 NO를 사용하지 않고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양국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국간 물밑작업이 선행요소다. 물밑작업으로 얼마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다음 가령 양국의 정상들이나 외교 담당자들이 합의된 사실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 물론 합의 이후조차 프로젝트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결국 양국이 합의된 문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프로젝트에 관한 양국의 언사는 그냥 관례적인 인사치레일 뿐이다.
한 때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오갔던 밀월의 언어들을 기억해보면 판단은 어렵지 않다. 당장이라도 정전협정이 성사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 9월 일본 오부치 총리와 만나 “한일 터널이 건설되면 홋카이도에서 유럽까지 연결되니 미래의 꿈으로 생각해볼 문제”라고 언급한 것은 무슨 뜻일까?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외교적 수사였음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야말로 꿈 이야기를 해본 것일 뿐.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간에 해저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왔지만 북한 때문에 실감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해저터널 착공 문제가 경제인들 사이에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내용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거절의사이다.
북한문제가 어느 세월에 해결이 될 것인가. 더욱이 북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사실상 일본이 훼방꾼이 아닌가? 그마저도 정부가 아닌 경제인들 사이에서 이 얘기가 다시 나올 것이라는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언급한 것은 대통령의 의중이 아주 정확하게 “우리 정부는 해저터널에 관심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인 셈이다.
두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있었음에도 그 당시, 국내든 일본이든, 조만간 해저터널이 뚫릴 것이라 보도한 언론은 찾기 어렵다. 즉 언론들도 이러한 언급들이 단지 외교적 수사 표현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일등신문을 자부하는 조선일보의 기자들이나 편집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한일 해저터널의 기본 개요도면[사진=위키피디아,링크 참조 ]
해저터널이 육상교통의 최종 종착지인 부산의 장점을 빼앗아가고 결국 일본에만 커다란 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들은 쌓이고 넘쳐 있는 상태다. 특히 당사자인 부산 시민들은 이런 점에 대해 매우 높은 인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1일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에 찬성했었다는 취지의 기사를 냈다. 아울러 민주당이 ‘친일 헛발질’을 했다는 설명을 제목에 곁들였다.
왜 그랬을까? 사실상 두 대통령이 해저터널을 거절했다는 사실과 해저터널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선일보가 몰랐을까? 만약 몰랐다면 자칭 대한민국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수준이 여기까지인 것일까? 알고도 저리 썼다면 조선일보의 다른 속내가 있었을 것일까. 물론 판단은 독자의 몫이고,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독자라면 그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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