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영국 상원, 귀족 세습시대를 마감
House of Lords (Hereditary Peers) Act 2026
그들만의 입법권 시대 , 마감
700년 귀족세습 상원제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민주주의가 남긴 반쪽 숙제
청원닷컴 · 편집부
2026년 3월 24일 / 조광태 기자
2026년 3월 18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한 장의 법안에 서명했다. 내용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태어난 가문 덕분에 의회에 입성했던 마지막 85명의 귀족들을, 이번 회기 종료와 함께 영구히 퇴장시킨다는 것. 그것으로 700년이 넘는 역사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 숫자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비교가 필요하다. 700년 전이면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었던 시절이고,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기 직전이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영국 상원에는 '스스로 선택받지 않은 자들', 즉 그저 올바른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만으로 입법자가 된 귀족들이 자리를 지켜왔다.
이 법의 통과는 단순한 의회 개혁을 넘어 하나의 문명사적 사건이다. 혈통이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지, 민주주의가 그 권력을 어떻게 용인해왔는지, 그리고 왜 지금에야 완전히 끝났는지—그 전체 이야기를 풀어본다.
혈통이 권력이 된 날: 마그나 카르타에서 귀족원까지
이야기는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남부 러니미드 초원에서 시작된다.
실정을 거듭한 존(John) 왕에게 분노한 귀족들이 왕에게 강제로 서명하게 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이 그것이다. 역사는 이 문서를 종종 민주주의의 씨앗으로 기억하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마그나 카르타는 귀족들이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대신 자신들의 특권을 헌법적으로 보장받은 문서였다. 왕에 맞선 귀족들의 승리, 즉 '다수를 위한 민주'가 아닌 '소수를 위한 과두'의 공식 출발점이었다.
14세기 에드워드 3세 시대에 의회는 마침내 두 개의 방으로 나뉜다. 도시와 주(州)의 대표들은 하원(Commons)으로, 대주교·주교·대귀족들은 상원(Lords)으로 분리되었다. 핵심은 상원 의석이 서서히 '세습'의 논리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왕이 특정 남성에게 소환장(writ of summons)을 보내고 그가 의회에 참석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소환권이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관행이었던 것이 14세기 말에는 법적 권리가 되었다.
1660년 '봉건 보유지 폐지법(Tenures Abolition Act)'은 이 과정을 완성시켰다. 토지를 보유하는 조건으로 군역(軍役)을 제공하던 봉건제가 공식 폐지되면서, 귀족들은 군사적 의무라는 짐은 내려놓았지만 입법 권한이라는 특권은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권력은 남기고 의무는 버린 것이다.
"왕권에 맞서 탄생한 귀족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에 맞서는 가장 완강한 성채가 되었다."— 정치학자 버논 보그다노르(Vernon Bogdanor), 킹스 칼리지 런던
민주주의 시대에도 살아남은 이유: 타협, 기능, 그리고 관성
보통선거가 실현되고 하원이 민의(民意)의 전당이 된 20세기에도 왜 세습 귀족들은 상원에 남아 있었을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동했다.
첫째, 제도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1832년
대개혁법(Great Reform Act)으로 하원의 민주성이 강화되자 귀족원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1911년 의회법(Parliament Act)은 결정적 계기였다—노동자계급 보험을 담은 예산안을 귀족원이 거부하자, 하원이 귀족원의 거부권을 박탈하는 법을 통과시켜버렸다. 이후 귀족원은 법안을 최대 1년(1949년 개정 후)만 지연시킬 수 있게 됐다. 완전히 무력화하기보단 '약화된 채로 존치'하는 타협이 반복된 것이다.
둘째, 기능적으로 유용하다는 논리가 있었다. 세습 귀족들은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정당 휩(party whip)에 종속된 하원의원들과 달리, 이들은 때로 정부 여당의 입법에도 반기를 들 수 있었다. 법률가, 군인, 외교관, 행정가 세대를 거친 가문의 경험이 입법 심의에 깊이를 더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셋째, 순수한 관성과 영국 특유의 '점진주의'였다. 영국에는 성문헌법이 없다. 제도를 갑자기 뒤엎는 것보다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정치문화가 세습 귀족원의 생존을 도왔다. "작동하는 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보수주의적 정서가 수백 년의 관행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1999년의 반쪽 개혁: 블레어는 왜 92명을 남겼나?
현대 세습 귀족 논쟁의 진정한 출발점은 1999년이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집권 후 상원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귀족원에는 약 750명의 세습 귀족이 앉아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보수당에 우호적이었다. 사실상 야당을 위한 저지선이 상원에 고착되어 있었던 셈이다.
블레어 정부는 1999년 귀족원법(House of Lords Act 1999)을 통과시켜 세습 귀족들을 대거 퇴장시켰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인 타협이 일어났다. 세습 귀족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정부는 92명을 '잠정 잔류'시키는 데 동의했다. 이 92명은 남은 세습 귀족들끼리의 선거를 통해 뽑혔다—보수당 42명, 교차벤치(무소속) 28명, 자유민주당 3명, 노동당 2명의 방식으로.
비판론자들은 이 타협을 '역사적 실수'라고 불렀다. 92명이라는 숫자는 타협의 결과물이지 어떤 민주적 원칙에서 도출된 숫자가 아니었다. 이후 25년간 세 차례의 개혁 논의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26년의 완전 폐지는 그 27년 만의 숙제를 마무리한 셈이다.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이 민주주의에 더 가까운가
이번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영국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양쪽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수천 명의 귀족들이 이 나라를 섬겼고, 수천 개의 법률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족제비 가죽 겉옷을 두른 반동의 역사가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니콜라스 트루 경(Lord True), 보수당, 귀족원 폐막 연설 2026.3.10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 세습 귀족 처리방식
영국국이 마지막 세습 입법 귀족을 퇴장시키는 데 700년이 걸린 반면,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훨씬 빠르게, 그리고 더 철저하게 귀족의 입법 특권을 폐기했다. 그러나 방식은 각국의 역사적 경로에 따라 다채롭다.
이 비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대부분의 나라가 전쟁이나 혁명이라는 '충격' 속에서 세습 입법 특권을 폐기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대혁명, 독일은 1차 대전 패전, 일본은 2차 대전 패전이라는 국가적 단절을 계기로 삼았다. 반면 영국은 그 어떤 혁명도, 침략도 겪지 않은 채 700년을 내부 개혁의 논리만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스웨덴의 사례는 특히 흥미롭다. 1866년 이미 신분제 의회를 폐지했지만, 상원 자체는 여전히 간선제로 남아 있었다. 결국 1971년 완전한 단원제로 전환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귀족 잔재를 청산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반면 네덜란드는 1848년에 귀족의 입법 특권을 없앴지만 작위(爵位) 사용은 지금도 허용하고 있다. 귀족의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한'을 분리한 셈이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문제: 다음 과제는?
세습 귀족이 사라졌다고 해서 귀족원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쪽 개혁'이라는 새로운 논쟁이 시작됐다.
현재 귀족원에는 약 700명에 달하는 '종신 귀족(Life Peers)'이 남아 있다. 이들은 총리가 추천하는 임명직으로, 사망과 함께 작위가 소멸한다. 세습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개혁된 것이지만, 여전히 유권자가 선출한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총리가 자신의 지지자, 정치 후원자, 은퇴한 의원들을 대거 귀족으로 임명해왔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세습 귀족이 오히려 이 '정치적 임명' 귀족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노동당 정부는 장기적으로 귀족원을 "더 대표성 있는 두 번째 원"으로 교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의원 선출제를 도입하면 하원과 경쟁하게 되고, 임명제를 유지하면 정치화 문제가 계속된다는 딜레마가 있다. 단, 참고할 만한 선례는 있다—1999년의 '임시 조치'가 완전한 폐지까지 27년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미해결된 논쟁이 있다. 국교회(Church of England) 주교 26명이 여전히 '성직 귀족(Lords Spiritual)'이라는 이름으로 상원에 자동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란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성직자에게 자동 입법 의석을 부여하는 유일한 나라가 영국이라는 비판이 이번 법안 심의에서도 제기됐지만, 이번 개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세습 귀족을 없앤 것은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총리가 임명한 700명의 귀족원이 과연 민주적인가—그것이 진짜 질문입니다."— 선거개혁협회(Electoral Reform Society), 성명서, 2026년 3월
에필로그:700년 끝에 남은 것
보수당 귀족원 원내대표 니콜라스 트루 경은 3월 10일의 역사적인 표결 직후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7세기가 넘는 세습 귀족의 의회 봉사가 이제 끝났습니다. 수천 명의 귀족들이 이 나라를 섬겼고, 수천 개의 법률이 개선됐습니다. 족제비 가죽 외투를 두른 반동의 역사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은 일종의 항의이자 고별사였다. 세습 귀족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논리에서 '태어남으로써 입법자가 되는 권리'는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 세대엔가 반드시 청산될 역사적 부채였다.
그러나 이 종언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세습의 자리를 채운 700명의 임명직 귀족들이 얼마나 더 민주적인지는 아직 답해지지 않은 질문으로 남아 있다. 왕좌에서 내려온 세습 귀족들이 영국 상원의 마지막 비민주성이었는지, 아니면 그보다 더 불투명한 권력의 첫 번째 제물이었는지—그 판단은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700년이 걸렸다. 다음 개혁은 과연 얼마나 걸릴까.
[기사 출처 및 참고] NPR, Wikipedia (House of Lords (Hereditary Peers) Act 2026), GOV.UK 공식 발표, House of Lords Library (2026년 3월), SAIS Review of International Affairs, Electoral Reform Society, UK Parliament 공식 역사 자료 등을 참고해 편집부에서 작성했습니다. 인용 발언은 원문 보도를 토대로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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